
좋은 디자인은 기능의 수로 결정되지 않는다.
제품을 디자인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유혹이 생긴다.
기능을 하나 더 추가하고 싶고, 화면을 조금 더 풍부하게 만들고 싶고, 사용자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어진다. 하지만 실제로 좋은 제품을 만드는 팀을 보면 방향이 조금 다르다. 그들은 새로운 기능을 계속 추가하기보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낼지 더 많이 고민한다.
최근 다녀온 두 번의 UX 해커톤에서 그 사실을 더 깊게 체감할 수 있었다.
한 번은 UBC UXathon에서 디자인 멘토로, 그리고 또 한 번은 Emily Carr University에서 열린 Flui Design Jam에서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학생들의 프로젝트를 지켜보며 멘토로서 반복적으로 했던 질문과 심사위원으로 평가하면서 중요하게 보게 된 기준은 결국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프로덕트를 만들어서 사용자에게 주고 싶은 가치가 뭔가요?”
“사용자들이 이 서비스를 이용했을 때 어떤 경험으로 기억되길 원하나요?”
“이 제품을 한 마디로 설명한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결국 좋은 디자인 팀은 기능을 더 만드는 팀이 아니라, 하나의 본질에 집중하는 팀이다.
멘토로 참여했던 UBC UXathon


UBC UXathon에서는 두 팀을 멘토링하게 되었는데, 흥미롭게도 두 팀의 상황이 꽤 달랐다.
한 팀은 이미 꽤 복잡한 기능을 포함한 와이어프레임을 준비해왔고, 다른 팀은 아이디어를 막 피봇한 상태였다.
첫 번째 팀과 이야기하면서 내가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은 이거였다.
“이 서비스는 결국 어떤 가치로 기억되기를 원하는가?”
그 팀은 꽤 의욕적이었고 자신의 논리를 똑똑하게 설명할 줄 알았다. 잘하고 싶은 만큼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아 보였다. 설명하면서 보여준 와이어프레임은 여러 좋은 앱들의 편리한 기능들을 가져와 조합한 형태였다. 하지만 설명을 모두 듣고 난 뒤 자연스럽게 떠오른 질문은 이거다.
“그래서 내가 이 서비스를 왜 써야 하지?”
기능이 많다는 건 반드시 좋은 신호가 아니다.
오히려 핵심 가치가 흐려질 위험이 더 크다.
그래서 그 팀에게는 여러 기능을 계속 확장하기보다 하나의 핵심 가치에 집중해 보라고 조언했다. 사용자가 이 서비스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를 경험이 무엇인지, 그 질문부터 명확하게 하자는 이야기였다.


기능보다 감정이 남는 경험
두 번째 팀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그들은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부정적인 순간을 다루는 서비스 경험을 고민하고 있었다. 이미 여러 번 피봇을 거치면서 다소 지쳐 보였고, 방향을 완전히 잡지 못한 상태였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아이디어와 개념을 천천히 들으면서 이 팀이 어디로 가야 할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이 팀과의 대화에서는 기능보다 경험의 여운이 더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 서비스가 사용자에게 "어떤 기능을 제공하는지"보다 "어떤 감정으로 기억되기를 원하는가?"
제품 경험은 종종 기능으로 설명되지만, 사용자가 실제로 기억하는 것은 기능보다 경험의 감정일 때가 많다.
멘토로서 나는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여러 아이디어가 흩어지지 않도록 하나의 의미 있는 방향으로 정리하도록 돕는 역할에 집중했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Flui Design Jam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Emily Carr University에서 열린 Flui Design Jam에는 총 32개의 팀이 참가했고, 심사 과정에도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주중 퇴근 후 시간을 따로 내어 심사를 진행했고, 공정한 판단을 위해 내가 맡은 팀뿐 아니라 모든 팀의 프로세스와 발표 영상을 확인한 뒤 최종 점수를 매겼다. 다양한 성격이 엿보이는 팀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흥미로운 인터랙션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프로젝트들을 비교하면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실수도 있었다.
한 번에 너무 많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
여러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다 보니 기능이 계속 추가되고, 결국 방향이 흐려지면서 어딘가 부족한 느낌을 채우기 위해 비주얼 요소로 장식을 덧붙이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좋은 평가를 받은 팀들은 조금 달랐다.
그들은 클라이언트의 여러 요구사항 속에 숨겨져 있는 핵심 문제에 집중했고, 문제 정의에서 해결까지의 흐름이 논리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리고 시각적인 요소도 어디서 강조해야 할지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왜 이 기능이 필요한지, 왜 이 디자인을 선택했는지 대부분 결정에는 이유가 있었고, 그 reasoning이 명확하게 이해됐다.



디자인은 더하는 일이 아니라 선택하는 일
디자인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더 많은 것”을 만들고 싶어진다.
기능을 더 추가하고,
인터랙션을 더 넣고,
화면을 더 화려하게 만들고 싶어진다.
하지만 좋은 디자인은 대부분 그 반대 방향에서 시작한다. 불필요한 노이즈를 줄이고 문제의 핵심을 더 선명하게 만들어서 사용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더 명확하게 하는 것.
결국 디자인은 얼마나 많은 것을 추가했는가보다 무엇을 남기기로 선택했는가에 가까운 작업이다.
좋은 디자인은 기능의 수에서 나오지 않는다.
명확한 사고와 의도적인 선택에서 시작된다.
학생들의 치열함 속에서 받은 영감
경력이 쌓이고 최근에는 팀을 리드하는 역할이 늘어나면서, 어느 순간 디자이너로서 처음 가졌던 질문들이 조금 흐려질 때도 있었던 것 같다.
해커톤 폐막식 이후에는 심사위원, 멘토, 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가볍게 식사하며 네트워킹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오프닝에서 내가 했던 답변이 인상적이었다며 먼저 찾아와 이야기를 건네는 학생들도 있었다.
학생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어떤 시각에서 디자인을 바라보고 있는지 직접 들으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당연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아직 낯설고 막연하게 느껴질 수 있는 단계라는 것도 다시 떠올리게 됐다. 동시에 나 역시 그 자리에 있을 때 얼마나 서툴고 많은 것을 몰랐었는지 자연스럽게 생각났다.
이번 해커톤 현장에서 학생들의 치열함과 집중력을 보면서 나도 많은 자극을 받았다.
짧은 시간 안에서도 문제를 끝까지 파고들고, 자신이 만든 프로덕트를 또렷한 논리로 설명하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들의 과정과 결과물을 지켜보며 디자이너로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본질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개인적으로도 디자이너로서의 출발점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자리에 초대해 준 UBC UXathon 팀과 Flui Design Jam 팀에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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